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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유게시판

잘못은 신에게도 있다

고달구 2015-03-23 18:49:26 416
사용자3:  생산성 향상에 관한 사항은 부공장장님 말씀과 생산부장님 말씀을 들어 잘 이해되었을 줄 믿습니다. 노사 양측이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으니까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전종업원에게 공개하여 두루 알리는 게 좋겠습니다.
근로자 3:  여기서 핀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습니다.
사용자 2:  핀?
근로자 3:  네, 끝이 뾰족한 옷핀입니다. 생산부장님은 아실 거예요.
사용자 4:  무슨 얘기야? 영이가 말해봐.
근로자 1:  이런 상태에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.
사용자 4:  왜?
근로자 1:  저희는 천오백 명의 근로자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.
사용자 3:  그렇지, 그런데?
근로자 1:  저희는 존대말을 쓰는데 부공장장님도 부장님들도 반말을 쓰십니다.

사용자 1:  우리의 실수입니다.
사용자 3:  회의록엔 어떻게 됐죠? 처음 부분을 고쳐주세요.
근로자 1:  옷핀에 관한 이야기는 생산부장님이 더 잘 아실 테니까 직접 듣고 싶습니다.
사용자 4:  난 금시 초문이라니까.
사용자 3:  다시 말씀해주십시오.
사용자 4:  네, 그러죠. 옷핀이 도대체 어쨌다는 건지 전 모르겠습니다.
사용자 2:  옷핀?
어머니: 옷핀을 잊지 마라, 영희야
영  희: 왜, 엄마.
어머니: 옷이 튿어지면 이 옷핀으로 꿰매야 돼.
근로자 3:  그 옷핀이 저희 근로자들을 울리고 있어요.
영  희: 아빠보고 난장이라는 아이는 이걸로 찔러버려야지.
어머니: 그러면 안 돼. 피가 나.
영  희: 찔러버릴 거야.
근로자 3:  밤일을 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. 누구나 새벽 두세시가 되면 졸음을 못 이겨 깜박 조는 수가 있습니다. 반장이 옷핀으로 팔을 찔렀습니다.
사용자 4:  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.
근로자 4:  저희는 벌레가 아녜요.
사용자 2:  왜들 이래요!
근로자 5:  반장이 옷핀을 짧게 잡았습니다. 그 끝으로 팔을 찌르는 거예요. 살속으로 파고들어 잠을 쫓아 틀은 잘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. 그렇지만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밤일을 하는 조합원들이 울면서 틀 사이를 뛰는 것을 너무 자주 보았습니다.
근로자 4:  생산성 향상과 핀의 관계를 알고 싶습니다.
사용자 4:  아무 관계 없어요.
근로자 2:  핀을 쓰는 건 아셨죠?
사용자 4:  왜들 이러지, 정말. . . (중략)

근로자 1:  이의를 말씀드려야 되겠지만, 우선 사항이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겠습니다.
사용자 2:  그러면 안 돼요. 말해봐요.
근로자 1:  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, 그것은 금지 사항입니다. 우선 협의할 안건이 있어서 지금은 말씀 안 드리겠어요. 금지 상항이 안 지켜지고 있는 것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많아요.
사용자 5:  모든 걸 법대로 하자면 은강에서 돌아가는 기계들 대부분을 지금 세워야 됩니다.
사용자 4:  기계는 세워두면 녹이 슬어요. 공장 문도 닫아야죠. 그렇게 되면 여러분 모두가 일할 곳을 잃어요.
사용자 1:  엉뚱한 비약입니다. 두 분 말씀에 잘못이 있습니다.
사용자 2:  두 분이 하신 말씀은 회의록에서 빼도록 하죠.
사용자 1:  빼세요.
아이 1: 쟤들은 빼.
아이 2: 왜?
아이 1: 난장이 아들하곤 놀 수 없어.
영  호: 형.
나: 참아, 영호야.
영  호: 말리지 마. 저 새낄 죽여버릴 거야.
아이 1: 어! 이게 날 쳐!
영  호: 죽어! 죽어!
나: 놔줘, 영호야. 영호야, 영호야!
아이 3: 난장이가 온다!
아이 4: 난장이가 온다!

(중략)
사용자 1:  지부장은 사용자와 근로자의 이해 관계가 아주 상반되는 거로 믿고 있죠?
근로자 1:  지금, 은강에선 그래요.
사용자 1:  잘못 알고 있어요. 사업이 잘되면 이익을 보는 것은 여러 근로자들야요.
근로자 1:  근로자들만의 이익이어서는 안 됩니다. 노사간의 이익이어야 합니다. 이것이 저희들의 이상예요. 지금은 너무 불공평합니다. 공평해야 산업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평화가 이뤄집니다.
사용자 5:  집어치워!
사용자 3:  왜 이래요?
사용자 5:  쟤가 뭘 압니까?
사용자 1:  앉으세요.
사용자 5:  왜 재로 하여금 산업 평화 운운하게 놔둬야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.
사용자 3:  앉으세요.
사용자 1:  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잘못 알고 있어요. 회사가 이익을 올리면 그 이익 전체를 몇 사람이 나누어 갖는 줄 아는데 아주 위험한 생각야요. 기업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이윤은 사회로 환원되고, 종업원 봉금으로 지급되고, 주주 배당금으로 나가고, 기업 자체 축적금으로 공정하게 배분되는 겁니다.
근로자 1:  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.
사용자 1:  준비한 말이 있으면 해봐요.
근로자 1:  종업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금하지 않고 올린 수치스러운 이윤을 어느 사회에 어떻게 환원합니까?  (중략)

사용자 1:  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돼요.
근로자 1:  근로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.
사용자 5:  감옥에나 가야 될 아이들야.
사용자 1:  아뇨. 그 말이 맞습니다. 밤반, 오후반 아이들이 밖에 몰려 있습니다. 얘들이 조합원을 선동하여 단체 행동을 하겠다는 게 분명해요. 얘들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이미 법을 어기고 있어요.
근로자 1:  아녜요. 궁금해서 모여 서 있는 거예요. 설혹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저희들은 하나를 잘못하게 되는 겁니다. 그러나 사용자는 달라요. 저희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어쩌다 하나인 데 비해 사용자는 날마다 열 조항의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.
사용자 1:  문을 닫으세요.
사용자 2:  양쪽 문을 다 닫으십시오. 얘들을 내보내면 안 돼요.
아버지: 영수를 당분간 내보내지 말아요.
어머니: 네
영  희: 큰오빠가 뭘 잘못했어? 잘못한 건 그 집 아이야.
아버지: 그 아이가 뭘 잘못했니?
영  희: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놀려댔어.
아버지: 그 아이는 돌멩이를 던져 우리집 창문을 깨뜨리지 않았다. 그 아이에겐 잘못이 없어. 아버지는 난장이야.


ㅣ 조세희 작,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ㅣ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中 ㅣ


* 중략은 임의 편집하였습니다.